대중사회 생성 배경
“대중 사회는 신분제가 폐지되고 산업이 가속화되면서 대두되었다. 18~19세기 유럽 사회가 농업을 기반으로 한 봉건 체제에서 상업과 제조 업 위주의 근대 사회로 전환하면서 사회 구성원의 계층 이동은 물론 지리적 이동이 불가피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 혁명은 미국에서 개척의 꽃을 피우며 막대한 노동력을 요구했고 팔려 온 흑인 노예와 범죄자는 물론 유럽 각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미국의 산업 발달 지역으로 몰리기 시작하였다.
점차 농업 경제 기반인 미국 남부 지역도 대규모 농장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자영농의 비중은 줄고 노예의 비중을 늘리게 되었으며 대농장주에게는 노예의 증가가 재산의 척도가 되어 노예 수급을 위해 면화 농장을 늘리는 상황까지 생겼다.
남부의 이러한 현상이 북부와 서부로 인구가 몰리게 된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빈민으로 전락한 소작농을 비롯한 도망친 흑인 노예, 그리고 히틀러의 학살을 피해 망명한 유대인들을 비롯한 인텔리겐차 그리고 개척 사업으로 성공한 영국인 등 다양한 인종, 계급, 문화를 가지고 도시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뒤섞여 살았다.
이렇게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된 사회는 혼란스러운 이질감으로 분열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게다가 영주와 노예의 주종 관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계약으로 맺어진 평등한 관계는 표면적이었을 뿐 이들의 삶이 이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에서 서술했듯 혼란스러운 초기 대중 사회에서 형성된 문화는 창조된 것이 아닌 익숙한 모방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문명이 태동할 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여기서 모방은 일종의 혁명과도 같다고 하였다(본래 대중 혁명이란 좋은 쪽으로 나아가면 새로운 문화로 탄생하는 것이고 나쁜 경우는 사회악으로 소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은 당시의 수준에 맞게 창작보다는 모방의 지름길(예술이 아닌 여흥이나 오락)을 택했다.
대중은 예술품을 대신하여 대량 생산된 값싼 상품을 소비 하며 편리함이란 정서적 위안을 얻었으며 귀족 사회 대신 새로운 계급 문화가 생긴 사회는 노동자를 비롯하여 품삯보다는 봉급을 받는 관리자, 전문가, 사무원 등 전문직으로 구성된 관료 계급이 주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서유럽에서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정착민들이 있었고. 이들은 나름 본국에 대한 자부심과 귀족들의 문화를 동경하던 중 일종의 흉내 내기처럼 유럽의 귀족 문화를 모방하였다.
이 세태를 놓칠세라 자본가들은 재빠르게 대중의 선호 및 취향을 파악하여 대중이 좋아할 만한 백화점(초기 백화점은 귀족 전유 상점으로 직원들도 귀족 계급이 일했으나 점차 대중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콘셉트를 변화해 갔다), 극장, 놀이공원 및 클럽 등을 짓고 대중 중심의 여가 문화를 확산해 나갔다.
“노동 시간의 단축은 대중들의 여가 욕구 증대로 이어졌다.”
기존의 봉건 사회로 유지되던 삶과 위계질서는 무너지고 있었고 수평적 계약 관계로 목적과 필요에 의해서 모인 초기 이주민을 비롯한 정착민은 점차 자신들의 정체성과 소속에 대한 불안과 불신 그리고 불평과 비판이 고조되며 집단 이기주의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이념적 갈등으로 국가 간 전쟁까지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인텔리겐치아들의 주도로 노동자들이 단체나 집단을 결성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나갔다.
대중들이 쟁취한 경제적·시간적 여유는 새로운 문화를 소비하고 싶은 욕구로 이어졌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한 대중은 풍요와 편리성이 보장된 산업 발달로 인해 이들의 여가 욕구는 몰개성적 및 상업화되어 갔다.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문화 산업으로 발전하는 동력이 되었고 표면적으로 인간의 지위가 평등해진 대신 어떤 여가 생활을 즐기는 가에 따라서 새로운 신분의 위계가 생성되는 조짐이 보였다.
여기서 잠깐, 노동자들의 여가 쟁취 스토리는 이렇다.
1865년 남북전쟁 이후 최대 수혜 도시는 중서부에 있는 시카고와 동북부에 있는 뉴욕이었다. 이 지역은 후에 블루스와 재즈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데 당시 남부의 농장에 예속된 노예들은 해방되었어도 현실적으로 당장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부흥한 대도시로 도망 혹은 떠나기 시작한 흑인 노예들은 강제 노역에서 자유 계약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고 그러한 흑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치욕으로 느낀 백인 하층 이주민과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이후 각자 자신의 처지를 강변하였고 이들은 같은 소속과 출신 지역끼리 뭉치며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노동 계약에 따라 더 유리한 조건에서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더 적게 일하기 위해 파업을 비롯한 집단행동에 나섰다.
그리하여 1890년 이후 근로자들은 파업의 대가로 10시간 넘게 일하던 노동 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보장받았다. 이를 위해 파업한 5월 1일은 오늘날까지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예상했지만 정작 이들이 찾은 곳은 가정이 아닌 다른 여가를 택했다. 그 들은 짧은 노동 시간과 높아진 임금으로 소비의 주체가 되면서 자본가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고 그들의 시간과 수입을 첫 번째로 영화에 소비하였고 두 번째로 음악(재즈)에 소비했다(미국은 1919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법의 시대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정치가 페리 클래스가 평민들도 비극(당시는 비극이 고급문화에 속했다)을 감상할 수 있게 극장을 신축한 선례가 있지만, 산업 시대가 도래한 후 생긴 영화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위해 생산된 최초의 문화 상품이다.
물론 최초의 영화는 1865년 프랑스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나(에디슨이 최초의 영상물 키네토스코프를 발명하였지만 영상물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는 전제하에) 상품으로서의 영화 산업은 미국에서 발전했다(1905년에 피츠버그에 최초로 영화관이 세워진 이후 1927년 무렵부터 미국 영화 산업은 보편적인 대중문화로 정착한다).
이처럼 영화가 새로운 대중문화로 자리 잡고 소비되면서 대중음악(재즈)도 뒤를 이었다.
(이제헌의 대중음악 연주와 비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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