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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정보와 지식

미국 대중음악의 시작과 발전

by media9 2022. 6. 11.

미국 대중음악의 시작과 발전

 

 

 19세기 중반 미국의 대중음악은 영국의 색채가 짙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문화적 언어적으로 영국에 귀속된 만큼 지배적인 영향을 받았고 청교도인 뿐만 아니라 퀘이커 교도는 펜실 베이니아주에, 가톨릭교도는 메릴랜드주에 정착하는 등 미국의 역사는 종교와 매우 밀접했다. 여기서 퀘이커 교도는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 정도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한 조지 폭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명상운동으로 시작하다 찰스 2세 때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이들도 퓨리탄처럼 종교의 자유를 찾아 현재의 펜실베니아주로 이주해 터를 잡았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종교적 신념으로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영국인은 이들만의 문화를 만들기 시작해 나갔고 1760년대 최초의 음악 놀이터라고 불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항구도시 찰스턴에서 음악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음악의 본거지 혹은 음악의 고향으로 불리는 찰스톤 등 미국 음악의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재탄생 및 발전하였다. 당시 찰스톤은 남부의 주요 항구로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미국의 대중음악은 보수적인 백인 토대 위에 흑인 중심의 음악이 성장하였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도시에 대중문화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상황에 따라 문화적 대이동 현상으로 확산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는 강의 범람도 포함된다.

 

 

 

1910년까지 흑인의 90%이상이 남부 농경지역에서 거주하였으나 1915년 대홍수로 인해 미시시피주 강 일대가 범람하면서 면화 농장이 황폐해졌다. 이를 계기로 일자리를 잃은 흑인들이 대거 북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면서 인종간 문화가 섞이고 새로운 컬러의 대중음악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이후로 전기와 통신 발달이 가능해지면서 물리적 이동 없이도 전국에 음악이 전파되면서 보편적. 공유.공감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미국의 대중음악 탄생 과정을 요약하자면

백인 청교도인이 북아메리카에 정착하고 남북전쟁 및 홍수로 인해 남부가 황폐화되고 흑인들이 대거 북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백인과 흑인 갈등이 심화되지만 결국 인종 혼합 및 흑인 중심의 대중음악 탄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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