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자되는 <지지고 볶는 여행> 속 영수와 영숙의 모습은, 누가 더 잘했고 누가 틀렸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충돌한 인류학적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 충돌을 단순한 성격 차이로 축소하기보다, 문화적 코드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불협화음으로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 이 리뷰는 출연자 개인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닌, 방송 내에서 드러난 캐릭터의 서사에 대한 시청자 입장에서의 분석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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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의 문화가 각인된 남자
영수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애잔함입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익숙했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답답했고, 어딘가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 엄마’의 방식과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영수의 말투, 식사 태도, 행동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아들로 오래도록 자라온 결과물입니다. 그는 그저 배운 대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입니다. 배운 문화가 너무 닫혀 있고, 타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에서요.
- 밥을 입안 가득 넣고 말하거나, 먹을 때마다 온갖 소리는 다 내고
- 냉장고 문을 무심코 열어두거나,
- 현지 음식은 거들떠보지 않고 냉동만두를 꺼내 먹는 모습.
이 모든 디테일은 '소탈함'이 아니라 배려의 결핍으로 비쳐졌습니다. 경제적 성공만큼이나 삶의 품격과 교양도 함께 성장했기를 기대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식사 태도나 일상적인 배려의 측면에서는 기본적인 소양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쉽게 말해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자기 자식 예쁘고 똑똑하다고 오냐오냐만 하면서 키우다보면 성인돼서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 법입니다. 사랑할수록 예의범절은 철저하게 교육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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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의식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의 영숙
반면 영숙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무례함’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 무례함은 행동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문화와 다른 타인의 질서 없음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숙의 반응은 충분히 납득됩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이상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영숙은 매사에 기준이 명확하고, 안목도 뛰어나며, 눈치도 빠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기 손으로 현실을 바꾸는 데는 매우 무능합니다. 이상은 높지만 실행력은 제로. 이는 어쩌면 비판적 태도에 머무르는 전형적인 ‘지적 소비자’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는 모두 영수가 되며,
그녀가 싫어하는 대상 역시 영수 같은 사람이다."
영숙은 아마도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살아왔을 겁니다. 나쁘지 않은 외모, 그에 걸맞은 태도, 약간은 도도하고 예민한 감수성.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사랑의 판에서는 늘 맞지 않는 조각처럼 튕겨 나가고 마는 것이죠. 진짜로 좋아하는 이 앞에선 오히려 푼수가 되고,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해 분노로 표출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영수에게 보여주는 까칠함은 아마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무력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3. 두 사람, 다른 문명의 대사들
영수와 영숙은 마치 전혀 다른 문명에서 온 외교 사절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서로를 이해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불편한 동행을 이어갑니다.
- 영수는 ‘엄마의 연장선’에서 살아온 인간입니다.
- 영숙은 ‘현대의 자기계발 문화’에 적응한 인간입니다.
그런 둘이 한 공간에 놓이면, 문제는 일상에서 터져 나옵니다. 젓가락을 놓는 방식, 문을 여닫는 습관, 상대방의 말을 듣는 태도 같은 아주 사소한 디테일에서부터 감정은 폭발합니다. 사실상 그들이 충돌한 건 성격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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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래서 우리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사실 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습니다. 단지, 이 모든 것이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에서 발생한 충돌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많은 갈등의 양상이 다시 보일지도 모릅니다.
영수는 고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영숙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연습이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우리는, 가족과 사회, 세대와 문화의 간극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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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방송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갈립니다.
“영숙이 왜 저리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고, “영수는 착하잖아”라는 말도 많습니다. 하지만 영숙의 입장을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쉽게 말할 수 없는 고충이 있다는 데에는 분명 공감대가 존재합니다.
물론,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본능을 조금 자제할 필요도 있었을 겁니다. 단지 엄마와 딸이 아닌, 타인과의 여행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결국 상대보다 더 날카롭게 굴었던 사람이 ‘더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결국 이 여행은 ‘이상적인 여행’이라기보다는, ‘이상한 여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겐 영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영숙이 낯익고 불편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여행의 진짜 목적은, 어쩌면 타인을 통해 나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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