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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이미지 컨설팅

최초의 슈퍼모델 리사 폰사그리브 스토리

by media9 2021. 7. 15.

리사폰사그리브는 1930년대 활동한 슈퍼모델 1세대이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같이 스웨덴 태생의 리사는 그녀보다도 먼저 태어난 1911년생이다. 1936년 한 포토그래퍼의 눈에 띄기 전까지 그녀의 직업은 댄서이자 조각가였다.  

 

 

물론 그러한 배경에는 집안 영향이 크다. 리사의 아빠는 치과의사이자 화가였고 엄마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정정하자면 그녀의 엄마는 너무 창의적이어서 당시 환경상 할 수 있는 게 창의적인 옷을 만드는 일이었다는 게 맞겠다. 그런 부모의 영향으로 리사는 어린 시절 하고 싶은 재능은 다 뽐내면서 성장했다.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던가?

 

 

 

암튼 전공을 살리기 위해 파리의 학교를 다녔고 성인이 되어선 스웨덴으로 돌아가 댄스 학원도 차리고 각종 댄스 대회도 다니며 커리어 우먼, 아니 실력있는 댄서로 잘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1935년 파리에 있는 동안 포토그래퍼 윌리가 그녀를 사진에 담아냈을 때 그녀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자태는 단연 돋보이고 독보적이었다. 뭐랄까 그녀는 자신의 포즈 하나 하나에 절대 내공을 담아 그녀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예술적 끼를 마음껏 보여줬다고나 할까.

 

 

이후 한창 잘나가던 온갖 패션지, 그러니까 하퍼스 바자나 보그 등에 포즈를 취하며 잘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 리사는 촬영장에서 만난 한 포토그래퍼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는 바로 담배 꽁초 하나에도 인생을 담아낸다는 고뇌의 작가 어빙 펜이다. 물론 리사는 저명한 어빙 펜을 만나기 전에 이미 유명한 셀럽으로 자리 잡았지만 둘이 함께한 힘은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었다.

 

 

둘의 케미는 당연히 좋았을 테고 어빙 펜이 찍은 그녀의 모습은 찍는 족족 예술로 남았다.  간혹 에펠탑에 위태롭게 매달려야하는 고충을 겪기도 했지만 예술적 혼을 담아내려면 그만한 위험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래 직업인 댄서가 촬영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도 맞지만 그녀는 모델이란 직업에만 올인하지는 않았다. 포토그래퍼 욕심까지 내서 제법 잘 찍었다.

 

 

어빙 펜에게 사진 찍는 기술을 배우고 1939년에 헤어졌다고 해도 될 만큼 포토그래퍼로서 실력은 출중했다. 그러나 결국 천생연분이었던지 1947년 둘은 다시 만났고 1950년 재혼했다. 이후 리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물론 아이 아빠는 어빙펜이었고.

 

 

아이들 양육도 있었고 현역에서 뛰기 불가한 매력 상실도 있었을 테니 더는 모델 활동을 하기 힘들었던 리사는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의류 사업에 손을 댄다. 참 부지런한 여성이다.

 

 

 

그러더니 1960년대에는 다시 조각가의 삶을 살면서 한 갤러리 대표가 된다. 그리고 1992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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