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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정보와 지식

헤비 메탈 역사상 최고의 보컬 리스트 로버트 플랜트

by media9 2021. 8. 23.

 

레드제플린의 리드싱어 로버트 플랜트

 

 

1948 8 20 영국의 웨스트 미들랜드에서 기술자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로버트 플랜트는 어려서부터 로큰롤에 빠졌고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렬한 팬이었다동네에서 엘비스 흉내를 제일 내는 소년으로 꼽혔을 정도이며 못지 않게 외모도 출중했다. 그의 아버지는 끼 많은 아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아들이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했기에 그가 회계사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로버트 플랜트는 레드제플린의 보컬리스트가 된다. 로버트 플랜트는 이후 헤비메탈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로버트 플랜트는 고음역대를 굵은 팔세토로 처리하는 높은 기교를 부리며 다듬어진 허스키 위에서 하이톤을 뽑아낸다또한 거대한 성량의 소유자여서 리즈시절엔 라이브 스피커를 찢어버린 일화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레드 제플린 4집까지의 창법을 일반적인 로버트의 목소리로 알고 있으나 로버트의 창법은 이후 바뀌었다.

 

 

 

그러나 노년기인 현재에도 관리를 하였기 때문에 수준급의 가창력을 유지하고 있다노년의 인상과는 전혀 매치가 불가능한 목소리는 덤이다흡연자에 음주까지 하는데도 정도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것은 하면서도 관리는 엄청나게 하였다고 보는 후문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평소 매우 유쾌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스무살이란 어린 나이에 모린이란 여성과 결혼했으나당대의 많은 록스타들이 그러하듯 결혼생활 내내 여러 그루피 수많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심지어 아내 모린의 여동생 처제와도 관계를 맺어서 플랜트와 처제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기도 했다.

 

 

 

창법 때문일지는 몰라도 노래부를 목소리가 조금 많이 야한 편이다 무대에서 성적매력을 과시한다며 설쳐대서 레드제플린 무명시절엔 안티들에게 까이기도 했다당시 레드제플린의 노래를 듣던 청소년들은 부모님이 오시면 소리를 줄였을 정도라고 하니. 흠...

 

 

별탈없을 것 같던 로버트 플랜트도 1977년에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 카락 플랜트가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서구에서 플라워 무브먼트가 한창이던 1967년에 로버트 플랜트 역시 히피즘에 도취되어 있었다영국 웨스트미들랜드의 웬즈베리 법원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마리화나 합법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하지만 나중에는 일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의 이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로버트는  헤어스타일에 애착이 강하다오죽하면 외모나 노래실력에 대한 칭찬보다 헤어스타일에 대한 칭찬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을정도아무튼 애착을 갖고 신경써서 관리했던 덕분인지 풍성한 금빛 머리의 효과까지 더해져 20 리즈시절 무대 그의 모습은 여심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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