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재거는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을 뿐인데도 초특급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에 부부가 쌍으로 패션 아이콘으로 군림하면서 살았다.
믹은 1943년 7월 26일 런던 남부의 다트포드에서 태어났다. 런던에 위치한 명문 경제대학에 다닌 것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키스 리처드, 브라이언 존스, 찰리 와츠, 빌 와이먼과 함께 시작한 블루스 밴드 결성으로 훗날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그룹 롤링 스톤스는 점잖고 얌전한 컨셉의 복장을 한 모범 시민 이미지의 비틀즈보다 더 섹시하고 아티스틱하다는 평판을 얻고 성장했다. 평판에는 각종 스캔들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건 사고를 의미한다.
그러나 의외로 건실하게 생명을 유지하며 40년 동안 명성을 쌓아온 믹 재거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과 연애 및 결혼을 하고 일곱 명의 자식을 두고 있다. 손주도 5명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와 결혼한 여성 중 비앙카와 함께 했을 때 가장 패셔너블한 커플로 이름을 알렸다. 아, 그의 대단한 여성 편력 중 안젤리나 졸리, 우마 서먼, 칼라 브루니 등과도 염문이 있었다고… 대체 이 노인네 매력이 뭘까.
그의 연애사만 나열해도 책 몇 권은 나올 이야기가 풍부하니까 이쯤 해두고…
33세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더는 로큰롤을 부르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지속적으로 투어를 다녔다. 그들이 다닌 공연으로 벌어들인 돈이 5억만 달러에 육박하였고 이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하고 싶은 건 다하고 한 믹 재거. 경제학도답게 적성에 맞는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롤링 스톤스의 버라이어티한 삶이 가장 영화처럼 찬란했다. 과연 그의 매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믹 재거는 목소리와 스타일뿐만 아니라 다소 무심한 듯 반항적인 태도 또한 독특하게 유명했다. 그는 한마디로 70년대를 풍미한, 이후 지속적으로 화제가 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다.
어릴때부터 공부도 잘해 매사 특출했던 믹 재거를 중심으로 만든 그룹 롤링 스톤스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비틀즈와 비교되며 대중의 취향을 결정했다.
음악적 업적을 보면
1965년 ’satisfaction’이란 곡을 발표한 후 4주 연속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 롤링 스톤스의 음악 장르는 미국인들이 즐겨 연주하던 블루스에 기초한 로큰롤을 재창조하여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2억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다.
1980년대 중반 믹은 솔로 활동을 한다면서 그룹을 떠났고 2011년에는 밥 말리의 아들 데미안 말리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한다. 솔로 데뷔를 결심한 이유는 초대 멤버이자 동네 친구 리처드와의 갈등 때문이다. 음악적 방향을 놓고 의견이 달랐는데 리처드는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인 로큰롤 블루스를 고수하고자 하였고 영리한 믹 재거는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85년 ’she’s the boss’ 를 발매하였고 좋은 반응을 얻은 편이다.
믹 재거가 빠진 롤링 스톤스가 1986년 음반 ‘dirty work’를 발매한 시기에 재거는 영화 ‘leathy people as single’의 주제곡을 발표하였고 둘은 옥씬각씬 서로를 비웃으며 싸우는 기간이 지속된다. 1987년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앨범 ‘primary cool’을 발매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앨범 실패 후 재거는 1989년 롤링 스톤스 품으로 돌아가 ’steel wheel’ 앨범 제작에 참여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투어 완료 후에 다른 그룹과 콜라보 작업을 하면서 솔로 앨범을 녹음했는데 1993년에 발매된 ‘wandering spirit’ 은 재거의 솔로 활동 중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성공에 자신감이 붙은 것일까. 2001년 ‘goody in the gateway’를 발매해서 롤링 스톤스의 멤버로부터는 환영을 받긴 했으나 대중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믹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있는 곳에서 혼자 독식하는 체질인가 봄. 그의 다재다능한 재주는 음악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그는 시, 그림, 조각을 사랑하고 영화 또한 사랑하였다.
그는 두 개의 그래미상과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했고 1989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3년에는 버킹엄 궁전에 초대 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 후로 듀크 믹 재거라는 칭호를 얻었다.
믹은 2001년부터 2014년까지 패션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르웻 스콧과 교제했다. 르웬 스콧은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날씬하고 긴 생머리를 하고 헐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을 대표했으나 공교롭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왜 그랬을까.
믹 재거의 여성 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곧바로 44살 차이가 나는 멜라니 햄릭과 교제하더니 아들까지 낳았다. 믹 재거의 8번째 자식이다. 2014년에는 손녀가 딸을 출산해 증조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믹 재거는 여자만 밝힌게 아니었다. 함께 콜라보로 작업한 적 있던 데이빗 보위와도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는 사실이 훗날 밝혀졌다.
70이 넘은 믹은 2019년 심장 수술을 하였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근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추천곡 리스트>
1. Sympathy for the Devil
2. Gimme Shelter
3. Jumpin' Jack Flash
4. Miss You
5. Start Me Up
6. Tumbling Dice
7. Fool to Cry
8.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
9. Midnight Rambler
10. Time Is on My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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