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3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난 아레사 프랭클린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새로운 부임지 디트로이트에서 목회를 해야했기에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머니가 10살 때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홀아버지 아래 성장하는데 그녀의 재능은 백만불짜리 목소리로 불리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선천적인 능력과 더불어 후천적인 환경이 그녀를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다. 아버지 애인이 최고의 가스펠 가수였다.
아레사는 8세 무렵에 침례 교회의 성가대가 되었고 14세에는 성가대의 수석 싱어로 활동했다. 16세가 되던 해에 체커라는 작은 레코드사를 통해 가스펠 앨범 'the gospel sound of aretha flanklin'을 발표했다.
이후 아버지의 조력으로 1960년 콜롬비아 레코드사의 제작자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961년에는 레이 브라이언트 트리오와 함께 앨범을 발표했지만 'rock-a-bye your baby with a dixie melody' 가 약간 알려졌을 뿐 크게 흥행하진 못했다.
1964년 앨범 'runin out of fools' 의 싱글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고 1966년 콜롬비아 대신 아틀란틱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후 비로소 대히트를 기록하는데 ' I never loved a man' 앨범 중 'Respect' 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다.
가스펠로 다져진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성은 리듬 앤 블루스 또는 소울을 베이스로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실력을 자랑했다. 이후 아네사는 지속적으로 명성을 유지하는데, 1967년 여름의 싱글 'baby I love you'를 비롯, 1968년의 'chain of fools', 'a natural woman', 'ain’t no way', 'since you’ve been gone' 등의 싱글들이 연이은 히트 대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소울 뮤직의 영왕, 소울의 마스코트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더이상 올라갈 곳도 없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한 아레사 프랭클린은 1968년에 'think, I say a little prayer', 'see-saw'로 히트하고 다음 해에는 'I can’t see myself leaving you', 'eleanor rigby' 등으로 정점을 찍고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엄청난 성공과 인기에 주체할 수 없어서 음주가 늘었고 최초로 슬럼프를 겪으며 힘든 70년대를 보낸다. 성량이 예전같지 않음을 알고 편법으로 다른 가수들의 커버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화려한 60년대 저물어갔다. 한편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성공과 인기에 알콜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최초의 슬럼프같은 것을 겪으며 70년대를 맞이했다. 그녀는 이것을 커버하기 위한 편법으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리바이블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곡의 노래들이 히트 선상을 지나갔고 벤 이 킹의 'don’t play that song' 과 사이몬&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오티스 레딩의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등의 싱글이 70년대 초반에 주된 히트를 한 그녀의 커버송이 되었다.
1972년, 아레사는 남부 켈리포니아 합창단과 함께 앨범 'amazing grace' 를 발매했다. 이 가스펠 앨범 발표 후 비로소 심신의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1973년 7월에는 퀸스 존스와 함께 ' hey, now, hey' 를 제작 발표하여 싱글곡 'angel'을 히트시켰다.
다음해 2월에 발표한 앨범 'let me in your life' 에서는' I’m in love' 와 'until you come back to me' 등의 싱글이 히트했다.
1980년대는 그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되면서 불행과 슬픔 속에서 보낸다. 소속사를 옮겨 'aretha' 를 발표하여 싱글 'united together' 가 비교적 성공한다.
다음해 가을에는 앨범 'love all the hurt away' 를 발표했지만 반응은 평범했다.
그러나 1985년 앨범 'who’s zooming who?' 가 발매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정상의 자리로 소환되었다. 또한 조지마이클과 듀엣곡 'I knew you were waiting'가 공전의 히트를 누린 끝에 1987년 차트의 정상을 밟았다.
2018년 76세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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