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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추천]뤽베송 감독의 대표 영화 그랑브루

by media9 2021. 5. 11.

뤽베송 감독의 대표작 그랑블루는 1988년 작품이다. 이 영화를 고딩시절 비디오로 빌려 본 후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로 늘 손에 꼽던 영화인데, 어찌된 일인지 20년이 지나서 보니 뭐랄까, 감정이 조금 서먹하다고나 할까. 내가 기억하고 있던 장면도 색다르고... 이번에 다시 본 영화는 감독판이라 못 보던 장면이 들어갔다해도 왜곡된 기억이 너무 많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영화에 너무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내 마음대로 기억을 조작하고 희석시키며 살았나 보다.

그랑블루 영화 줄거리 및 감상평

 

 

영화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흑백씬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생소하다. 정말 그 당시 영화를 본 거긴 한 건지 감독판을 새로 본 건지 아무튼, 이 영화의 흑백 씬은 어쩌면 영화에서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압축한 씬들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의 의도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건 그랬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떠오르게 한 초반부이다.

종교, 철학, 세계관 등 모든 것이 압축된 흑백 씬에서 제일 먼저 단순하게 떠오른 생각은 주인공 엔조는 정말 돌고래가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역으로 돌고레 작크가 뭍에서 살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바다로 다시 돌아간 건 아닐런지...그리고 골목 대장 엔조는 마치 신권에 도전하는 엉뚱한 군주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엔조는 인류의 문명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모계 사회 중심의, 엄마가 만든 파스타를 먹으며 가족 중심의 무리를 짓고 진화를 거듭하는 인간사. 농경이든 목축이든 인류의 역사는 무한한 도전과 경쟁을 해왔으니까.

미국 태생의 작크 엄마는 일찍이 미국으로 돌아갔고, 작크 아빠는 잠수를 업으로 삼다 물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다. 이보다 더 깊은 슬픔이 어디에 있을까.

 

 

작크는 태생부터 깊은 슬픔에 잠긴 삶을 살아야 했다. 작크에게 물 속은 엄마의 양수이며 고향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작크의 슬픔을 이해하려기보다 내가 영화를 본 그대로의 느낌에 충실하느라 그냥 슬펐을 뿐인데... 왜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감성이 메말라가는지 모르겠다. 감성이 메마른 대신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 조금 위안이 될 수도 있으려나...

돌고래를 닮은 작크의 연인 조안나

 

 

작크가 조안나를 보고 어디서 보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는 순간 돌고래를 닮아서였나? 싶었다. 왠지 돌고래랑 비슷한 느낌이 들던 여배우. 작크는 물 속에 들어갔던 심오한 모습은 사라지고 해맑은 소년 표정으로 조안나를 바라본다. 유감스럽게도 난 작크를 보며 조울증이 심한가 보다, 를 느꼈다.

 

 

나는 그랑블루를 보면서 줄곧 하나의 명제 안에 가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작크는 물 속의 삶을 자신이 좋아서라기보다 일종의 숙명처럼 느낀게 아닌가 하는 거였다. 엔조를 만날 때도 조안나를 만날 때도 작크는 더할나위 없이 맑다.

심각한 우울증일지도 모르는 작크

밖에서 돌고래 친구를 바라볼 때도 그다지 슬퍼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도 작크는 온 종일 마치 자신이 돌고래인양 물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감정이 슬퍼지고 그런 작크도 슬픔에 빠져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뤽베송 감독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언제나 매력있는 여배우를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조안나 베이커역시 무척 사랑스러운 캐릭터. 조안나와 서툰 첫 관계 이후에도 작크는 물속에 들어가 하루종일 돌고래와 함께 있다 나온다.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현실적으로 조안나는 이때 작크를 떠났어야 했다.

물 속에서 노는 남친을 기다리다 밖에서 웅크린 채 잠이 들던 조안나 모습이 참 안쓰럽게 보였다. 작크의 아이를 갖고 싶었고 작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작크는 좀처럼 조안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너무 무책임한 태도 같았는데, 모든 건 조안나의 순정 혹은 무모함이 자초한 일이란 생각도 들고.

그랑 블루는 남성 중심의 영화

엔조는 작크가 인간의 영역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기록을 깨보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하다 끝내 숨을 거둔다. 그리고 엔조는 물 속 깊은 곳에서 무슨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작크를 이해하겠다며 자신을 물 속에 묻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남성 중심의 영화다. 엔조의 엄마는 강압적으로 억압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작크의 엄마는 자식을 버리고 떠나고, 엔조의 애인은 푼수이며 조안나는 사랑이 전부인 상처 받기 쉬운 캐릭터다. 작크는 가장 힘들 땐 바다 밑에 있을 때라고 말했었다. 올라갈 이유를 찾아야 했으므로... 조안나는 자신이 이유가 되어주길 바랐다. 조안나는 가지 말라고 절규하는 데도 작크는 가서 봐야 할 것이 있다며 단호박 모드로 군다.

  "뭘 본다는 거예요. 밑에는 어둡고 차가울 뿐이에요. 나 임신했어요. 듣고 있어요? 가세요. 가서 보세요. 내 사랑."

조안나는 끝내 작크를 붙잡지 못하고 보내주게 된다. 그리고 인상 깊던 마지막 장면.

 

 

작크가 바다 속 깊은 곳에서 만난 건 돌고래. 뭍으로 올라갈 수 있는 생명 줄 같은 기구를 붙잡고 손을 뻗쳐 보지만 돌고래는 가까이 오질 않고 약 1초의 망설임 뒤에 작크는 돌고래를 따라 가는데... 사람이라면 죽었겠고 돌고래라면 살아서 팔딱팔딱 돌아나니겠거니... 싶었다.

 

 

우울 할 때면 자기만의 동굴에 빠져 지낸다는 남성 특유의 우울함을 보여 준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들고... 바다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며 색감에 매료된 것을 두고 감동적이라고 했던 거였나 보다 싶었다. 그랑블루를 사랑하는 매니아들에게는 욕 먹겠지만 깊은 우울증이 이리 무서운가 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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