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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의 연기 인생 복기해 보기.

by media9 2021. 12. 19.

 

얼마 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본 <너를 닮은 사람>리뷰를 할까 말까 하다가 하기로 하고, 그러다보니 고현정의 연기 인생 복기 좀 해보자 싶어서 올려본다.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배우 고현정은 1971년 3월 2일 생이다. 그녀는 1989년 미스코리아 선, 진도 아니고 선에 당선되었음에도 이후 최고의 인기가도를 달린다. 당시 미스코리아 진은 오현경이었다. 여하튼 18살 나이에 미스코리아에 당선된 이후 그녀는 무명없이 스타행 직행 버스를 탔다.

 

 

당시 티브이 속에 비친 그녀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이보다 조숙해 보였고 얼굴도 조금 넙대대한 편이었고. 그러나 키가 커서 훤칠한 이미지에 목소리가 좋고 발음이 정확해서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 있었다. 얼굴은 동양적이지만 몸매는 서양적이니 남녀 모두 호감으로 보였던 것. 그러나 고현정은 단지 출중한 미모때문에 톱스타 반열에 오른 게 아니었다.

 

 

 

 

고현정을 최고의 스타로, 그것도 범접할 수 없는 특급 스타로 만든 것은 탁월한 연기력과 재벌남과의 결혼과 이혼 때문이었다. 고현정의 인생은 크게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뉠 수 있을 거 같다.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이후 mc부터 각종 예능에 출연하면서 스타성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미스코리아 출신은 무조건 스타로 가는 지름길이었기에 그녀의 앞날도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현정은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해서 연기자로 이견없이 합격할 수 있었고 이후 대작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짧고 강렬하게 본격 성인극 신고 들어갔고 <두려움 없는 사랑>부터 <여자의 방> 찍는 것마다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데뷔한 지 불과 2년 만에 주연급 배우로 완벽하게 성공한 인생을 사는 듯보였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3년 <엄마의 바다>란 드라마로 절절한 연기를 잘해냈다. 드라마가 워낙 뜬데다 고소영이란 엄청난 신인 스타가 탄생하느라 상대적으로 고현정의 명성은 덜한 듯 느껴졌으나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1995년 귀가 시계로 불린 대작 <모래시계>의 주연 배우로 정점을 찍는다. 모래 시계는 최민수와 박상원의 캐미가 더 돋보인 드라마였고 당시 드라마가 워낙 재밌고 화제성이 높아서 고현정은 그냥 덤으로 명성을 더한 듯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 드라마 이후 고현정은 최고의 배우로 정점을 찍었고 그럼과 동시에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다. 바로 용진이 형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의 결혼 발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배우들은 기내식이 아닌 재벌과 결혼하는 것을 일종의 수순처럼 혹은 로망처럼 여기며 솔찮이 들려오던 스캔들이었는데 고현정마저 재벌집에 시집을 간다니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고현정이 무명도 아니고 당시 최고로 잘나가는 스타였으니 그럴 수 있다, 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여하튼 고현정은 그렇게 은퇴하였고 십 년 동안 꾸준히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며 간간이 근황이 전해졌고 결혼 생활 중에 두 아이를 낳았고 일련의 사건 사고에 휘말리더니 예상했던 대로 8년만에 파경을 맞이한다. 위자료로 10억을 받았다는 말도 있고 인사동의 스벅 건물을 받았다는 말도 있고 하여튼 결혼 못지 않게 그녀의 이혼 소식은 대한민국에 파란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그런 그녀가 2005년 복귀한 작품은 지진희, 조인성과 함께 찍은 <봄날>이었다. 드라마 봄날 이전에 복귀 무대로 첫 등장한 고현정의 외모는 여성들에게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전성기 때도 피부 하나는 끝내 줬던 고현정이 여전히 탱탱하고 티 한점 없는 피부에 윤기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비롯 옷을 잘입은 것 같지는 않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고현정 스타일은 주목을 끌고도 남았다. 

 

 

 

봄날은 재미가 있건 없건 고현정이 십 년 만의 복귀작이니 무조건 봐야만 하는 필수 드라마였다. 그리고 연이어서 다음해 찍은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는 당시 핫한 배우 천정명과 찍었다. 그래서 당시 좌인성 우정명 이란 소문이 돌  정도로 고현정의 남성 편력을 암시하는 듯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래서 어찌보면 고현정은 연기보다 구설수로 주가를 올린 배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결혼 전과 이혼 후의 인생이 아주 버라이어티한 에피소드를 만들며 반전 역사를 써내려 가셨다. 

 

 

신비주의의 탈을 벗고 이혼 후 비교적 자유 부인 모드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2009년 <선덕여왕>과 무릎팍 도사의 게스트 그리고 다음 해 찍은<대물>까지가 그녀의 최고 리즈 시절이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 전 최고의 전성기 못지 않게 2000년대 후반은 고현정의 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연기에 물이 올랐다. 그녀의 존재감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나는 이때까지 고현정이 한국에서 연기를 제일 잘하는 여배우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다. 2013년 <여왕의 교실>을 볼때까지도 그녀의 연기력이 압도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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