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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간실격 궁상맞은 리뷰

by media9 2021. 11. 2.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였다. 우울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지만 질척거리는 것도 없고, 이상의 위트와 패러독스를 느낄 수 있던 글이라 좋았다. 이상이 다자이 오사무인가 다자이 오사무가 이상인가 싶을 정도로 감정선이 비슷했다. 둘 다 연배도 비슷하고 생의 주기도 비슷하다. 둘이 친구였을까. 

소설 인간실격과 드라마 인간실격

 

 

아무튼 드라마 인간 실격은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류준열과 전도연 주연의 시청률은 무척 저조했다고. 이상하게 시청률이 저조하면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드라마는 대중 타겟으로 만든 것이지 아트 영상이 아니다. 대중성에 실패했다면 작품성도 논할 것이 못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기 비애 아니 자기 희화로 비극을 가볍게 넘기려했다. 자신을 하찮은 부적응자로 여기며 그에 대한 좌절과 상실은 찰나로 넘겨 더욱 비애롭게 느껴졌던 작품인데…

궁상맞은 드라마로 전락한 인간실격

 

 

한국식 스토리 전개로 궁상맞은 드라마로 만들어버렸다. 12회를 꾸역꾸역 보면서 자식 밖에 모르면서 짠하게 살아온 부모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애잔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궁상의 끝을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졸부조차 궁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내가 그리 곱게 자란 환경도 아닌데 저렇게 배울 만큼 배우거나 놀 만큼 논 부류들이 저리 지지리 궁상맞고 처량하게 사는 꼴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약간의 판타지가 들어갔다 해도 정수 엄마나 부정의 아빠는 너무 극단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노인들의 삶은 리얼리티를 최대치로 살려서 오히려 민망했다고 치자.

 

드라마는 소설의 주제와 제목만 따와서 작가와 피디 나름의 방식으로 각색하고 상상을 더한 것인데 다자이 오사무가 그리고 싶은 작품은 절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대사는 정말 좋았다. 그것 때문에 이 드라마를 관심있게 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난 아무 것도 될 수 없었어요.”

뭔가 내 가슴 속을 깊이 파고 드는 대사였다. 그렇게 드라마에 동화되어 몰입이 되는가 싶었는데 너무 우울하고 궁상맞아서 스킵 스킵. 막판에는 짜증 이빠이.

이부정과 강재의 케미는 바람직했을까

20대의 강재는 부정의 자학 대사에 깊은 연민인지 공감인지를 하면서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으로 부정을 관심있게 본다. 그리고 몇 번 우연으로 만나고, 그 후로 한 번 더 만나면 같이 죽자고 한다. 죽음이 잘 모르는 이에게도 종용할 만큼 그리 쉽게 가는 관문이었던 걸까. 이 둘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드라마 결말이 궁금하지도 않지만 어떤 결말이든 과정이 껄끄럽다.

껄끄러운 몇 가지 포인트

드라마를 건성건성 보았다고 치기에는, 부정의 절망이 이해가 안간다. 어차피 자기 이름의 소설을 낸 작가도 아니고 대리 작가로 살다가 가증스러운 중년 여배우에게 영광을 뺏기고 증오하고 복수하면서 좌절하는 동기가 있다? 중년 여배우는 쇼윈도 부부인데 알고 보니 숨겨둔 자식도 있고 남편한테 맞고 살며 남편은 바람끼마저 다분하다. 이부정이 이 배우를 증오하기에는 이 여배우의 사연이 더 기구하다. 나중에 또다른 전모가 밝혀질 지 모르겠지만 12회차를 본 후 더이상 궁금하지도 않다.

 

 

암튼 그건 그렇고 이부정은 회사에서 잘리고 파출부로 일한다. 요즘은 파출부를 도우미에서 매니저로 승격해서 부른다고 하는데, 진짜 그렇다면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폐지 줍는 일이면 어떻고 잡부면 어떻다고 하는 인식이 중요한거지 거창한 수식어가 왜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암튼 이건 그냥 패스하기로 하고.

정수와 부정이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하는 것이 어떤 오브제로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남의 인생에 더부살이하는 것, 남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인생, 어쨌거나 직접 먹고 사는 일과 죽음은 가장 큰 대척점에 있으니까 극대화하고 싶었던 건가? 인간의 기본 욕구 의.식.주를 극명하게 보여주려고 한 건 이해는 간다.

 

 

그나저나 이름부터가 부정이 뭐냐고. 부자가 되라고 부정이라고 지어줬다고 했던가, 암튼 자꾸 이름에서 이부진을 떠오르게 한다. 뭐랄까 그렇게 이름이 이상한 것에 대해 위안을 하는 기분이랄까.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이쯤에서 패스하고.

이부정이란 캐릭터 이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아무튼 중년 여배우의 진상질로 부정은 임신 5개월 째 유산하고 회사도 잘리고 힘들게 장만한 오피스텔 잔금을 갚기 위해 뭐라도 했어야 했다. 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남편 정수는 결혼할 뻔한 동창과 썸을 타는 것을 들켜 부정의 스트레스는 만땅이었고. 그런 불길하고 부정적인 사건들이 1년 전에 일어났었다.

수정4

그리고는 고작 1년 만에 인생을 다 포기한 것처럼 세상 우울한 여자로 살아간다. 물론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것도 이해가 간다. 죽으려고 작정한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사람이 뭔가 커다란 이유가 있어야 죽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부정은 부모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자랐고, 5살 어린 남편 정수도 비록 센스는 없지만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시어머니 역시 자식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무례함은 있을지언정 며느리에 대한 자랑과 애틋함이 없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부정은 왜 그리도 세상에 부정적이기만 했던 걸까.

물론 드라마 막바지에는 살아갈 이유 및 사는 재미를 느끼는 장면도 나오겠지. 뻔한 수순으로다 세상을 달리 보려 하겠지. 다만 대신 희생한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죽음도 있겠고 현재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고 싶겠지. 뭔가 리셋하고 싶은 기분을 모르진 않지. 그런데 부정이 그렇게 살기에 주변 사람들은 너무 합리적이고 적합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여서 짜증이 난다는 거다.

죽은 듯이 깊게 잠만 자는 것의 의미

강재가 돈만 주면 다 하는 호스트맨인가로 나오는데, 그런 사람에게 연락해서 눕고 싶었어요. 자고 싶었어요. 이러고 곤히 잠만 자고 나온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나오는 것처럼 여자는 죽은듯이 깊게 잠만 잔다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이는 부정이 강재를 통해 편안함을 느끼고 비로소 안도 혹은 휴식을 취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연출하고 싶었을 거다. 각자 가난하게 태어나 치열하게 경쟁 사회에서 살지만 일종의 불안한 열패감으로 생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에 둘이 만나 생의 꽃을 피우고 싶은 그런 심리를 표현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의 감정이 너무 하찮게 느껴진다.

내 주변에 딱 그런 친구가 있어서 오버랩이 되어서 그런 걸까. 제 딴에는 자신만의 고민의 깊이가 남달랐을 테지만 자기 불행과 우울을 핑계로 주변 사람을 한없이 힘들게 만드는 유형. 차라리 강재와 일탈을 하던가. 구두를 신고 산을 오르고 남의 텐트에서 불편한데도 누워서 몸을 만지려고 한다던가, 거기에 또 구차한 이유가 있음. 그런 오글거리는 설정은 뭐지? 등산하는 사람들 불륜 소스인가. 이 부분이 제일 거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의 턱선은 좋아 보였다. 턱선을 좋아하는 페티쉬가 있는 게 분명해. 

책을 읽는 기분이지만 오글거림이 심한 드라마

뭐랄까 순규와 민정 씬처럼, 조은지와 양동근처럼 현실적이면서 참신한 씬을 연출 할 수는 없었을까? 이래서 풋풋한 연애는 젊은 배우들끼리 해야 심쿵하고 귀여운 거다. 연상 연하든 뭐든 중년의 멜로 분위기는 좀 징그럽다. 아무 일이 없어도 응큼하고 불순하게 느껴진다. 내가 늙은 거겠지. 아니 생각해 보니 극 중 부정은 남편보다 더 어린 남자를 좋아하게 된거네.

그래도 작가는 부분부분 감동적인 대사를 잘 써내려 갔다. 궁상 맞아서 못보겠다가도 대사들이 유치하지 않고 오히려 심금을 울리는 대사들이 많아서 좋은 점도 많았다. 배우들의 나레이션이 많아서 책을 읽어주는 기분이 들었고. 그러다가 둘의 감정 연기만 나오면 개오글거려서… 류준열이 목소리는 좋아도 느와르 멜로 컨셉은 아니니까.

 

 

그 개오글거리는 부분은 부정과 강재만이 아니었다. 정수와 경은의 썸 타는 씬은 더 오글거려서 못 봐줄 정도였다. 그냥 객관적으로 보면 완벽한 중년 불륜 썸인데 무심하고 건조하게 승화하는 척, 그러니까 막장 아닌척하는데 소재가 너무 고루했다. 무미건조함 속에 멜로가 싹 틀 수가 있을까? 결국 둘은 흐지부지 종지부를 찍었다지?  뭔가 있을 법한 일상을 전혀 있지 않는 캐릭터들에게 갖다 붙인 기분이랄까. 암튼 드라마 실패 중 가장 큰 패인은 투 머치 궁상 코스프레였다는 점. 아니 그리고 가난하면 다 바보인 줄 아는 건지 강재 엄마나 부정 아빠나 순수함을 넘어서 거의 모자란 바보처럼 묘사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답답하게 그려 놨음. 

어처구니없던 케이크 에피소드

 

 

생각난 김에 부정이 받아 온 케잌을 부정 아버지가 강재에게 꽃이 있는 부분을 조각으로 나눠주고, 부정이 남편에게 먹으라고 하는데 맛난 것도 많은데 이런 케잌을 샀냐고 면박 줄 때도 어이 없었음. 보아하니 태극당 버터 케이크 같은데 그 케잌집 싸지도 않고 레트로 분위기로다 인기 폭발인데 백화점 식품 담당이 그런 대사를 친다는 것도 아이러니했음. 디테일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닌가. 센스가 떨어지거나 시대 착오적이거나.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실격에 나온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넘치도록 훌륭했다. 손나은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고. 배우들 연기는 물론, 영상미, 음악, 작가의 필력, 연출 다 비교적 괜찮았다. 궁상맞은 스토리만 빼면..... 암튼 조금 아쉬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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